드라마감상 - 기적
Ⅰ. 서론
노희경 작가의 기적이라는 드라마는 현대 사회에서 어느 가족이나 겪을 수 있는 가족 구성원 중의 한 명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진부적인 이야기 중인 하나이다. 수업 시간 잠시 발표를 하면서 슬프지 않았다고 이야기 한 것도 물론 이런 이유에서 온 것이다. 뭐 이 드라마도 여러 드라마와 같이 뻔한 이야기겠지 라는 생각이 벌써 나의 머릿속에서 든 것도 사실이다. 이런 편견 아닌 편견 속에서 드라마를 보았다. 솔직히 나는 우리나라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는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라지만 방금 이야기 했듯이 진부한 구성 중에 하나이다. 그 드라마 속의 내용이 아무리 잘 구성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이야기의 중심 내용이 아버지가 폐암에 걸려서 죽어 간다는 것은 우리나라 드라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구성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미국 드라마를 자주 보는 편이다. 그 수많은 미국 드라마의 내용은 우리나라의 드라마처럼 사랑 이야기나 불륜 이야기에서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형을 위해서 온 몸에 문신을 하고 감옥에 들어가는 동생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프리즌 브레이크나 유령을 볼 수 있고 그 유령의 원한을 해결해주는 고스트 위스퍼러 같은 드라마들은 우리나라의 드라마 형태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내용을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젊은 층의 모습을 봐도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를 많이 본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 기적이라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남들 보다 좋은 눈으로 드라마를 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동안 노희경이라는 작가에 대하여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다. 진부한 내용 속에서 어느 정도의 다른 무엇을 담고 있는 것도 같았다. 말로는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작가들의 일률적인 모습에서 벗어난 것이 있는 것만 같았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과 아버지의 기대에 차지 못하는 자식들의 모습, 그리고 항상 자신의 남편의 편을 드는 아내의 모습은 어느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나, 그 속에 표현된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행동, 감정 표현 등은 폐암에 걸려 삶의 의지를 점차적으로 잃어가는 주인공 장영철의 모습이나 남편을 보고 괴로워하는 아내의 모습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모습들을 드라마를 다 보고 생각한 것은 매니아 층이 왜 있는지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많이 부족한 점도 있겠지만 이 기적이라는 드라마에 대해서 내가 아는 한 최선을 다하여 비평을 해보도록 하겠다.
Ⅱ. 드라마 기적의 분석
1. 눈과 손목시계의 의미
드라마에서는 여러 가지 암시적인 사물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우선 눈이라는 것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가 수업 시간에 잠시 동안 자신의 의견을 발표한 시간을 가졌을 때에 눈이라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가 되었다. 주인공인 장영철이 친구와의 헤어짐에서 눈이 보고 싶다라고 이야기 한다. 여기서 우리는 눈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 하였다. 첫 번째로는 눈이라는 것은 하얀 색을 가지고 있고 그 것은 순결과 치유를 나타낸다는 것이 첫 번째로 나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단지 눈이 보고 싶다라는 것은 눈이 올 시기가 지났고 다음에 눈이 올 때까지 살고 싶다라는 삶에 대한 욕망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중에서 후자를 선택하고 싶다. 단순히 더 살고 싶다는 삶에 대한 욕망으로 말이다. 나의 생각으로는 이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주인공인 장영철이 사죄를 해야 되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업 시간에 질문을 받았던 아내에 대한 내용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였다. 우선 아내는 맨 마지막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장영철의 세 자식과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주인공 장영철은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서 지금의 위치에 까지 오르는 인물이다. 그의 대사 중에서는 어린 시절 집에서 나와서 나의 힘으로 지금의 지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 와중에 세 명의 자식을 두게 되고 언제나 자신의 친구보다 빠르게 진급을 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탄탄대로를 건너왔다라는 말이다. 그 속에서 그의 세 자식들은 어느 집안의 자식들보다 못한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고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에게 돌아 온 것은 자식들에 대한 실망감뿐이었다. 어느 자식 하나 자신의 성에 차는 인물은 없었다. 그나마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하던 첫째 아들이 자신의 생각과 같이 의사가 되었지만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유학 보내고 혼자 살고 있는 기러기 아빠가 되어있다. 하지만 그나마 마음에 들어 하는 첫째 아들이 아버지와 두 동생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외국인과 동거를 하지만 결혼을 바라지 않고, 임신을 한 둘째 딸과 애 딸린 이혼모와 결혼 한 셋째 자식은 장영철의 마음속에서는 항상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자식들이다. 사실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모든 사람은 부모가 될 것이라는 전제를 둔다면 자신의 자식이 위와 같은 모습으로 된 형태를 취하게 된다면 누가 그 것을 좋게 생각할지는 미지수 일 것이다. 사회의 통념상 기러기 아빠는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자식의 조기 교육을 위해서 지금의 수많은 아버지들이 이러한 모습을 띄고 있다. 현재 사회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외국인과 동거를 하고 살아가는 모습이나, 애 딸린 이혼모와 결혼 한다는 것은 아직까지 사회의 통념상으로는 이해가 힘든 부분이다. 어려서부터 집을 나와서 힘들게 돈을 벌고 지금의 위치에 올랐는데 자신의 자식들이 사회적 통념상으로 이해하기 힘든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장영철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 실망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장영철의 어머니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자. 세 번의 재가를 했다는 장영철의 어머니는 장영철의 인생에서 큰 도움을 주지 못한 인물이다. 세 번의 재가를 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각자의 인생에서 세 번의 결혼은 이해가 힘들다. 그 결혼들이 자신의 아들인 장영철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것 하나 도움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재가였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든지 도움은 줄 수 있었겠지만 그 도움을 자존심이 센 장영철이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장영철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은 자신의 재가를 원치 않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여러 번의 재가는 결국에는 아들과 멀어지는 이유가 되어 버렸다. 결국 늙어서는 자식을 생각하여 자식의 집에 가게 되고 음식을 건네주지만 떳떳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편도 없고 자식도 등을 돌린 외로운 늙은이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만든 것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장영철의 어머니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 편으로는 역겨움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고 시장의 자리 하나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모습에서 나는 늙은이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고집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보아 드라마 속의 등장인물들 중에서 장영철이 직접 가서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해야 되는 인물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눈이라는 것에 두 가지 의미 중에서 나는 두 번째의 눈이 올 때까지 더 살고 싶다는 장영철의 인간적인 욕망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장영철의 가부장적인 생각 때문에 남편 말에 순종적인 인물이고 항상 몸에 파스를 붙이고 다니는 인물이다. 암에 걸린 장영철은 아내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못해 주었던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마음을 열고 아내를 대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부장적인 모습이 남아있는 현대 사회에서 장영철이 아내에게 무조건적으로 사죄를 해야 된다고 보기는 어려운거 같다. 이 것 또한 사회적 통념상 아직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장영철의 첫사랑인 김숙희가 콘도에서 두고 간 손목시계의 의미를 살펴보자. 암에 걸리고 그 것을 이겨 낸 김숙희는 처음에는 장영철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로 등장하고 있다. 기적을 바라는 장영철에게 김숙희가 암을 극복해 낸 것은 큰 의미를 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김숙희와의 만남에서 암이 재발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하룻밤의 외도를 보낸 후 김숙희는 떠나고 만다. 그 와중에 자신의 시계를 두고 간다. 나는 시계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 보다는 두고 간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시계는 시간의 흐름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물건이다. 하루 동안 시계를 수십 번은 볼 것이고 그 때마다 흘러간 시간을 볼 것이다. 즉 시계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물건이고 나아가서는 시간의 흐름이고 세월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간의 흐름과 세월의 흐름을 자의든 타의든 간에 두고 간다는 것은 김숙희에게 더 이상 흘러 갈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의미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손목에 항상 있어야 될 손목시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2. 장영철과 김숙희의 하룻밤은 외도인가?
우선 외도라는 사전적 의미를 보도록 하자. 정도가 아니고 정도를 어기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는 보통 외도라고 하면 불륜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장영철과 김숙희는 단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수업 시간에도 이야기 했듯이 불륜이라는 것은 오랜 시간동안 이어온 것이어야 되는데 이 단 하룻밤을 외도로 볼 수 있느냐는 말을 하였다. 이것은 사람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 틀리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외도로 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외도로 볼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나의 생각은 수업 시간에도 이야기 했듯이 장영철의 행동이 외도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의 상황에서 장영철은 여자와의 성관계를 즐기기 위해서 하룻밤을 보낸 것이 아니다. 보통 우리가 이야기하는 남자들이 창녀에게 일정한 금액을 내고 육체적 쾌락을 느끼기 위해서 하는 성관계와 다른 모습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김숙희는 오랜 전에 장영철과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리고 장영철의 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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