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와다 하루끼 `한국전쟁` 5장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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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북분단과한국전쟁] 와다 하루끼 `한국전쟁` 5장 정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대하여

2. 중․미 전쟁의 체제와 전개

3. 정전회담의 개시
본문내용
제5장 중미전쟁

- 다시 중국의 참전에 관하여
중국은 한국전쟁의 진행사태를 지켜보면서 미군의 반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의 참전에 대한 논의를 해나갔다. 미국과의 군사력 비교에서 공군력과 원자폭탄이 가장 큰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마오쩌뚱은 원자폭탄을 두려워하지 말고 한국전쟁에 참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지도부를 최대한 지지했던 스탈린은 9월 15일 미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불리해진 북한군을 보면서 중국측에 참전을 요청했고, 북한의 김일성과 박헌영 역시 소련과 중국측에 참전을 요청했다. 결국 중국공산당은 50년 10월 2일 한국군이 38도선을 돌파한 날, 참전을 결정하였다. 10월 8일 펑떠화이를 총사령으로 하는 중국인민지원군 설립에 관한 명령이 내려졌다. 그런 후에 저우언라이가 소련에 파견되면서 중국과 소련 사이에 약간의 의견충돌이 있었다. 중국측에서 소련에 소련공군의 출동을 요구했지만 소련이 이를 거절한 것이다. 이에 마오쩌뚱은 8일에 내렸던 출동명령을 잠시 보류하기도 했지만, 무기와 장비 등을 소련이 지원하는 것만으로도 중국은 그냥 참전하기로 다시 결정되었다. 10월 19일 중국군은 압록강을 넘어 북한에 들어왔다.

- 중미전쟁의 체제와 전개
중국인민지원군이 한국전쟁에 참가함으로써 내전은 중미전쟁이 되었다. 이미 한국군은 유엔군 사령관인 미군 사령관 지휘 아래 들어가 있었고, 중국군이 참전하면서는 북한군이 중국군 사령관 지휘 아래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원군 내에 김일성이 아닌 박일우가 조선인민군과의 협조를 위해서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