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25)

 1  [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25)-1
 2  [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25)-2
 3  [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25)-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25)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대하여

2. 중․미 전쟁의 체제와 전개

3. 정전회담의 개시
본문내용
제 5장 - 중미전쟁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관하여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여하기까지의 과정에 관해서는 주롄룽의 저서 「마오쩌뚱의 한국전쟁」이 잘 말해주고 있다. 당시 중국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타이완 침공작전을 중지하기로 결정한다. 바다 넘어 타이완으로 진공하기 위해서는 공군과 해군이 필요한데 당시의 중국으로서는 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 시작 후 조선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동안 중국 내부에서는 전쟁 참여 여부를 놓고 한바탕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논의 속에서 마오쩌뚱은 미국의 공군력과 원자폭탄을 두려워 말라며 미국과 싸울 수 있으면 싸울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매카서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이후 전쟁의 흐름은 변했다. 9월 29일에 김일성과 박헌영은 중국의 군사적 원조를 구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내용의 전보를 슈찌꼬프에게 보내고 10월 1일에는 중국에 해방군 출병을 요청한다. 이에 스탈린은 슈찌꼬프에게 조선을 도와주라는 전보를 보내고 중국에도 의용군 요청 전보를 보낸다. 결국 10월 2일에 중국은 참전을 결정하고 5일에는 즉시출병 결의를 채택한다. 8일에는 펑떠화이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중국인민지원군 설립에 관한 명령이 내려진다. 나아가 이 날 마오쩌뚱은 소련의 원조 및 공군지원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저우언라이를 소련에 파견하였다. 저우언라이는 소련으로부터 공군지원을 약속받지만 다시 몰로또프로부터 약속한 공군지원을 실시할 수 없다는 전보를 받는다. 이 때문에 12일 밤 정치국 긴급회의가 열리고 군대파견 문제가 다시 논의되지만 소련에 관계없이 계속하여 북한 출병을 주장하는 마오쩌뚱의 의견을 결국 따르게 된다. 모스끄바에 있던 저우언라이가 소련에 참전결정을 전하자 소련 측에서는 상당히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고 10월 중순 이후 소련 공군부대가 중국 동부에 진주하며 유엔군과의 공중전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10월 19일 중국군은 드디어 압록강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