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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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30)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대하여

2. 중․미 전쟁의 체제와 전개

3. 정전회담의 개시
본문내용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관하여
한국 전쟁이 시작된 후 조선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동안, 중국은 한국 전쟁 참여 여부를 고민하고 있었다. 미군의 반격이 예상되기 때문에 중국의 참전은 중미 전쟁이 될 것이었다. 마오쩌뚱은 매카서의 인천상륙작전 이전에도 중국 인민군의 참전과 미국과의 전쟁을 주장하며 미국의 원자폭탄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9월 15일 매카서의 인천상륙작전 이후에 미군은 서울을 탈환하기 위한 공격을 개시하여 전쟁의 흐름은 변했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소련의 스딸린에게- 적군이 38도선을 넘을 때에는 소련의 직접적인 군사지원이 필요하며, 중국 등의 국제의용군 부대 조직을 원조하도록 하는 전보를 보냈다. 전보를 받은 스딸린은 김일성과 박헌영에게 1. 조선 공화국의 방위 조직 사업 2. 빨치산 전쟁 조직화 3. 지도부의 자신감 회복 4. 의용군부대에 의한 지원 을 전하여 지도부의 자신감을 회복시키려 했으며 또 중국에 의용군 파견을 요청할 것을 약속한다. 소련과 평양에서 동시에 참전 요청을 받은 중국의 마오쩌뚱은 정치국 확대회의를 거쳐 참전 결정을 논의하면서, 저우언라이를 소련에 파견해 소련의 공군원조, 장비제공 등의 원조를 끌어내려고 했다. 소련은 미국과의 직접 교전을 피하기 위해 무기와 장비만을 공급하고 작전시에 공군의 엄호 정도는 해줄 수 있다고 합의하였고, 저우언라이는 베이징으로 돌아왔지만, 소련은 다시 공군지원을 해줄 수 없다고 하였다. 소련의 공군지원 거부에 대해 논란이 일었지만, 결국 마오쩌뚱은 12일 정치국 긴급회의에서 소련의 그밖의 지원태세와 불참전의 손해, 참전의 이익 등을 들어 참전을 주장하여 저우언라이 등을 설득한다. 10월 13일 중국의 참전 결정이 스딸린에게 전보로 전해지고, 스딸린은 매우 기뻐하며 소련 공군의 지원도 은밀하게 행하였다. 10월 19일에 드디어 중국군이 압록강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