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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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42)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대하여

2. 중․미 전쟁의 체제와 전개

3. 정전회담의 개시
본문내용




- 다시 중국의 참전에 관하여

중국에게 전쟁 발발 후 북한군의 계속적 공세와 이로인한 남한 및 연합군의 후퇴는 분명 긍정적인 의미로 다가왔으나 불안감을 떨친 수는 없었다. 특히 공군력과 해군력에서 뒤떨어지는 북한군에게 언제 미군의 반격이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이러한 염려는 계속 되었다. 이에 중공군은 전황이 불리해 질 경우를 대비해서 한국전쟁 참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 과정에서 미군과의 전면전이 일으킬 상황에 대해 많은 걱정이 있었고 특히 미군의 막강한 공군력과 원자폭탄은 가장 큰 경계 대상이었다. 그러나 마오쩌뚱은 군대의 수량, 부대의 질에서 중공군의 우세를 주장하며 참전을 결정한다. 원자 폭탄의 특성상 일단 사용하게 되면 아군과 적군 모두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에 미군이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과 전세계적으로 원자폭탄이 사용을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은 마오쩌뚱의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 주었다. 이렇게 이미 참전을 결정한 상태에서 중공군이 우려하는 미군의 반격,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게 되고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되고 만다. 상황이 급박하게 변하자 먼저 소련의 스탈린이 우려를 표명하며 북한군 지휘부를 독려한다.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지침을 하달하기도 한다. 먼저 적이 38선을 넘을 것을 확신하여 이에 대한 방어를 지시하며, 남쪽에 남아있는 군대를 중심으로 빨치산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지도부의 자신감 회복을 통한 강력한 조직 재구성과 군 재건, 이에 필요한 각종 지원을 약속하고 중공군과의 참전 상의가 있을 것임을 전달한다.
한편 스탈린은 중국과의 합의를 통해 물자 지원과 공군력 지원을 약속한다. 후에 스탈린이 공군 지원을 거부하지만 중국은 이에 개의치 않고 참전하고 이에 감격한 스탈린은 북한 인민군의 표식을 단 공군력을 지원한다. 실제 중국은 북한이 점령당해 미국을 등에 업은 한국과 국경선을 맞댄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들에게 큰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고 이러한 사태를 막기위해 참전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