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45)
2. 중미 전쟁의 체제와 전개
3. 정전회담의 개시
1.중국 참전에 관하여
한국 전쟁이 시작하고 조선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동안 중국에는 참전해야한다는 점을 둘러싸고 논의가 일었다. 마우쩌뚱은 계속 미국과 싸울 수 있으며 싸워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원자폭탄이 투하되더라도 끝까지 전쟁을 수행한다는 입장이었다. 한편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면서 전세가 달라지자 9월29일 북한지도부는 스탈린에게 원조요청을 한다. 스탈린은 직접적 병력지원은 할 수 없지만 군수물자 지원을 약속하고 중국에 의용군 파견 요청할 것을 약속한다. 중국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는 10월 2일 이 문제를 논의하여 참전하기로 결정한다. 결정 후에도 중공당과 정부 안에는 출병신중론이 강하여 마우쩌뚱의 필사적 설득으로 10월5일 즉시 출병을 결의하였다. 10월8일 펑떠화이를 사령관으로 하는 중국인민지원군 설립을 하고 소련의 원조를 구한다. 스탈린은 공군출동 요구는 거절하나 군용장비 공급은 하겠다고한다. 마우쩌뚱은 소련의 공군 파병 거절에 10월8일의 명령 실시를 보류하나 12일 긴급회의에서 중국 참전을 적극 지지하여 최종결정을 내린다. 이 연락을 받은 스탈린은 감격하여 상당히 적극적인 자세로 10월 중순이후로는 북한마크 비행기를 탄 중국공군 비행사 옷차림의 공군부대를 은밀히 파병한다. 이때도 소련은 자신들의 참전을 공식화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10월19일 중국군은 드디어 압록강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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