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18)
2. 중․미 전쟁의 체제와 전개
3. 정전회담의 개시
1. 중국의 참전에 관하여
한국전쟁이 시작되어 조선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동안 중국 측은 참전해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논의가 일어나고 있었다. 미국의 공군력과 원자폭탄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마오쩌뚱은 중국이 미국과 싸울 수 있으며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전쟁의 흐름이 급격하게 변했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소련의 군사적 지원과 소련이 군사적 지원이 불가능하다면 중국이 북한을 도울 수 있도록 원조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중공단과 정부 안에는 출병신중론이 강하였으나 마오쩌뚱이 필사적으로 설득하여 중국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10월 2일 참전을 결정하였고 10월 8일 펑떠화이를 총사령으로 하는 중국인민지원군 설립에 관한 명령이 내려졌다.
중국정치국이 이미 지원군 파견을 결정하고 있었을 때 저우언라이는 소련을 방문해 스탈린과 조선 파병에 대해 논의하였다. 저우언라이는 소련 공군의 지원을 요구하였으나 스탈린은 미국과 직접 교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피하며 공군 출동 요구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마오쩌뚱은 소련 공군의 지원이 없다하더라도 군사 원조를 단행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스탈린은 중국의 결정에 크게 감동하였고 소련 공군의 지원을 은밀하게 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소련 공군 비행사는 중국공군 비행복을 입고 기체에는 북한 마크를 붙이고 참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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