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비보이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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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감상문 비보이 스캔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비보이 스캔들’을 읽고
처음 ‘비보이 스캔들’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탈선을 다룬 소설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소설은 ‘유리’의 죽음과 소문을 파헤치는 아이들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관심이 갔던 인물은 ‘영후’, 프린스 였다. 딱히 제목의 주인공이여서는 관심을 갖고자 한 건 아니였다. 의도치 않게 영후에 대해 의문이 자꾸 들었다. 읽는 내내 들었던 의문은 ‘영후’를 ‘프린스’라고 부르는 그 호칭에 있었다. 그냥 ‘프린스’도 아닌 ‘우리의 프린스’라고 불려야 했던 이유는 뭐였을까. 영후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자유를 가진 인물이다. ‘비보잉’은 그런 영후가 자유로운 인물임을 상징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소설의 핵심인 유리 또한 영후를 동경해서 비보잉에 관심 갖고 혜수가 비보잉 기술 이름을 다 외울 정도로 말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유리는 영후가 프로메테우스가 되길 원했다. 영후를 이 학교에서 우리를 지킬 구원의 영웅이라 생각한 것이다. 마지막에 경호는 영후가 ‘우리의 프린스’로써 우리와 유리를 지킬 의무를 져버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후를 ‘우리의 프린스’ 로 만들어낸 건 유리였고, 영후는 그럴 의무는 없었다. 영후가 살모사와 타협을 하고 전학을 가려했던 것은 자신의 입장에서 유리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유리는 이 학교(노멘스힐)에서 프로메테우스 같은 존재로써의 ‘우리의 프린스’ 영후를 원했지만, 영후는 그저 유리를 좋아하는 고등학생 남자아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과연 누가 범인일까’에만 신경쓰며 소설을 읽어 나갔다. 유리를 둘러싼 사건들의 범인은 결국 소설 내내 끌어가던 지희, 영후, 준영, 혜수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갑작스런 경호의 등장으로 범인은 ‘우리’가 되었다. 유리의 죽음을 둘러싼 소문을 밝히기 위해 누구보다 애썼던 저4명의 아이가 소설 말미에는 결국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현실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진정한 가해자는 학교에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경호의 모든 행동은 금방 잊혀질 수 있었던 ‘유리의 죽음’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거였다. 초반에 유리가 죽고나서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유리의 죽음을 잊어가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마찬가지로 쉬쉬하며 일을 덮기에 바빴다. 그들에겐 같이 생활하던 친구의 죽음보다 모의고사가 더 중요했다. 이 소설은 우리나라의 ‘이상한’ 입시교육을 지적하고 있다. 친구와 서로 함께하는 그 때의 그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데 그런 소중한 시간동안 가장 중요한 건 그저 문제집 한 문제라도 더 푸는 것이라 학교는 가르치고 우리는 배웠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유리의 죽음을 야기했다. 그런 비정상적인 학교에서 지희, 혜수 그리고 영후는 그나마 ‘멀쩡한’ 아이에 속한다. 하지만 학교는 그런 이들을 ‘문제아’라 치부한다. 혜수만이 장미반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볍게 넘어간다. 과열된 입시 경쟁에 아이들은 순수함을 잃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커가고 있다.학교에서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상처를 보살펴야하는 건 선생인데 소설 속 선생들은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쁜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어른이다. 그런 선생들 밑에서 아이들은 똑같이 자라나고 있었다. 유리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그 결과, 유리는 이런 어른들에게 큰 상처를 받게 된다. 동경하던 부모님을 증오하며 자신을 더럽다고 생각해 계속해서 손을 씻고, 향수를 뿌려대기 시작한다. 아이들만이 서로의 손을 잡아주려 조금이나마 노력했고, 유리를 죽인 건 어른들이다. 소설에서의 어른과 학생들을 볼 때마다 ‘세월호 사건’이 겹처서 생각났다. 세월호도 마찬가지로 어른들의 무책임한 이기심에 아무 잘못없는 아이들만이 엄청난 희생을 했고, 윗 사람들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보다는 서로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다. 세월호와 소설 둘 다, 제대로 된 ‘어른’없는 세상에서 아이들만이 피해를 입었다. 유리를 구해야 했던 건 단지 소설 속 아이들만의 일이 아니다. 이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일 것이다. 유리같은 학생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나’ 먼저 올바른 어른으로써 행동해야할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청소년 소설’이지만 어른들에게 주는 의미가 더 큰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