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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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전쟁이 시작되어 조선인민군이 남진하는 것을 바라보며 미군의 반격이 있을 것임을 많은 사람들이 예견하고 있었다. 그 경우 중국이 참전할 지에 대해 논의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미군의 공군력과 원자폭탄이 큰 문제였다. 마오쩌둥은 이 때부터 미국과 싸울 수 있고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9월 15일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이후 전쟁의 흐름이 변하게 된다. 9월 29일 김일성과 박헌영은 적군이 38도선을 넘을 때에는 직접적인 소련의 군사지원이 필요로 하고,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국제의용군 부대의 조직을 원조해달라는 전보를 작성한다. 그들은 소련군이 직접 개입해주리라고 생각한 것이라기보다 중국군의 원조를 구하는데 스딸린이 영향력을 행사해주기를 바란 것이었다. 10월 1일 스딸린은 김일성과 박헌영을 격려하고 진정시키려는 메시지를 전한다. 원군 파견에 관해서는 중국에 의용군 파견을 요청할 것을 약속하였다. 중국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는 10월2일 이 문제를 논의하여 참전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이 날은 한국군이 38도선을 돌파한 날이었다. 그러나 10월 4일과 5일 펑떠화이가 참가한 가운데 정치국 확대회의는 계속 진행되는데 중공장과 정부 안에 출병신중론이 강하여 마오쩌둥의 필사적 설득으로 10월 5일에야 즉시출병 결의를 채택한다. 김일성에게 출병을 전하는 전보를 친 것은 10월 8일이다. 마오쩌둥은 이날 소련의 원조 및 공군지원 문제에 관해 상의하도록 하기 위해 저우언라이를 소련에 파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