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한미유엔군의 북진공격(37)
2. 이승만대통령의 희망과 현실
3. 미국의 참전과 북진
4. 한미군의 북한 점령
1. 한국전쟁의 개시와 미국
미국의 아시아전략 정책문서인 ‘NSC 48’과 ‘NSC 68’을 보면 미국은 공산주의를 ‘봉쇄’하고 ‘격퇴’시키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이 문서가 발표될 즈음 미 국무장관 애치슨은 한 연설에서 미국의 ‘불퇴 방어선’을 발표한다. 그런데 이 방어선에서 남한과 타이완이 방어선 바깥에 놓이게 되는데, 이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을 침략하도록 결의한 정도는 아니지만, 소련이 북한의 행동계획을 승인하는 하나의 재료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커밍슨은 애치슨이 이 연설을 통해 상대(북한)를 유인하는, 상대가 행동할 것을 기다리는 전술이었다고 본다. 즉, 북한이 먼저 공격을 하도록 유인하여 미국과 한국이 이에 응전함으로써, 일본을 지켜내고, 정부에 대한 반대를 제거하는 등의 전략적인 목적이 있었다고 하나 이렇게 간주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본다.
이 당시 남한에 관해서는 미국은 이승만의 북진계획을 경계하고 있었다. 단지 미국은 남한이 북의 공격을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병력만을 갖도록 정책을 실행하고 있었다. 이런 정책 속에서 미국이 과연 북한의 공격을 전혀 예측하지 않았던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된다. 사실 미군의 첩보조직은 중국으로부터 부대의 도착, 소련으로부터 무기의 도착을 확실히 포착하고 있었고, 이것을 워싱턴으로 보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점에 대해 월러비는 자신들은 북한의 위험한 군사력형성에 관해 워싱턴에 보고했지만 그것을 믿지 않은 국무성에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즉, 첩보조직이 보낸 정보를 워싱턴에서는 다르게 해석하였다는 것이다. 이 당시 워싱턴은 소련의 침공 의지가 없이는 북한의 침공은 있을 수 없을 것이고, 다만 북한은 국경근처에서의 게릴라전과 심리전 정도를 행동 할 것이라 예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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