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20)
2. 중․미 전쟁의 체제와 전개
3. 정전회담의 개시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관하여
한국전쟁이 시작되어 조선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동안 중국 측은 불안한 눈으로 사태를 보고 있었다. 미군의 반격이 있을 때 중국이 참전해야 한다는 점을 둘러싸고 여러 차원에서 논의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 마오쩌뚱은 미국과 싸울 수 있으며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원자폭탄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그의 의견이 전체적으로 강한 영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전부 매카서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기 전 이야기이다. 9월 15일 시작된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쟁의 흐름은 변했다. 20일 미군은 한강을 넘어 서울을 탈환하기 위한 공격을 개시했다.
10월 8일 마오쩌뚱은 북한에 참전 결정을 알렸다. 또한 소련의 원조 및 공군지원 문제에 관해 상의하기 위하여 저우언라이를 소련에 파견하였다. 저우언라이는 9일 밤 소치에서 스딸린에게 소련 공군의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뻬이징에서는 이 회답에 충격을 받아 12일에 출동중지 명령이 내려졌으나, 그 후 마오쩌뚱은 13일에 소련 공군의 지원이 없더라도 중국군은 참전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모스끄바에 있는 저우언라이에게 타전하였다.
결국 소련의 스딸린은 중국의 참전을 기뻐하여 소련 공군의 지원을 은밀하게 행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소련 공군 비행사는 중국 공군 비행복을 입고, 기체에는 북한 마크를 붙였다. 스딸린은 소련군이 참전하고 있음을 숨기도록 엄격하게 조건을 단 것이다.
10월 19일 중국군은 드디어 압록강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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